똥오줌은 억울하다

2017. 7. 12. 01:51My-ecoLife

[독일댁의 생태적인 삶]

-화장실만 조금 바꾸면 생태적 순환의 일등 공신(글 전문 보기)


1596 년 유럽에서 처음 고안된 수세식 화장실[각주:1]은 현재 우리 집에 들어오기까지 400년 넘는 시간 동안 발전을 거듭해 오늘날 화장실의 표준이 될 정도로 널리 퍼졌다. 이 획기적인 발명품은 버튼 하나 누르는 것만으로 냄새나는 똥오줌을 눈앞에서 즉시 사라지게 만들어 생활을 깔끔하고 편리하게 해 주었다. 그러나 변기 물부터 대규모 하수처리장 운영까지 쏟아부어야 하는 자원과 에너지가 결코 만만치 않다. 한국수자원공사 통계 자료[각주:2]에 따르면 2014년 기준으로 가정에서 변기 물 내리는 데에만 1인당 하루 평균 사용하는 수돗물 178L의 1/4인 44.5L를 쓰고 있다. 상황에 따라 일정 기간 먹고 마시지 않아도 살 수 있지만 싸지 않고는 도통 살 수가 없으니, 매일 세탁(35.6L)이나 부엌일(37.4L)에 쓰는 것보다 많은 물을 똥오줌과 함께 흘려보내고 있는 셈이다.


글 _ 사진 김미수


밥이고 거름이던 똥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던 ‘푸세식’ 화장실은 쪼그려 앉아 볼일을 봐야 하고, 똥오줌이 항상 공기 중에 노출되어 있어 똥파리가 쉬 꼬이며 악취가 가득한 불편하고 불쾌한 곳이었다.


오스트리아에서 지역사회지원농업(CSA)을 하는 지인은 집 안에 개량한 푸세식 화장실을 두고 쓴다. 똥오줌이 차는 구덩이를 깊게 파고 좌변기 커버를 얹어 냄새가 덜 나고 사용하기도 편할 뿐더러 1년에 한 번 이를 퍼내 퇴비를 만든다. 내가 경험한 것 중 가장 깔끔한 옛날식 화장실은 초등학생 때 놀러 간 친구 할머니 댁에 있던 ‘똥 돼지 뒷간’이다. 돼지 두어 마리가 사는 너른 헛간 문을 열고 들어가 전용 사다리를 타고 위층에 올라가 볼일을 보면, 짚이 깔린 아래층에 사는 돼지가 바로 먹어 치우는 독특한 구조였다. 돼지가 만들어 내는 꿀꿀 화음에 잠시 놀란 것 외에는 악취는커녕 산뜻한 건초 냄새가 나 흠잡을 데 없이 만족스러웠다.


조선 시대에는 남의 집 똥을 치러 다니는 똥지게꾼들이 서로 이웃집 똥을 선점하려고 경쟁했단 이야기를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난다. 1979년부터 실내 퇴비 화장실을 만들어 사용해 온 조셉 젠킨스의 《똥 살리기 땅 살리기[각주:3]》(녹색평론사 2004)에는 미군들이 한국전쟁에 참전했을 당시 한국 사람들이 화장실을 잘 꾸며 이용객을 끌어모으는 이른바 ‘똥 호객 행위’를 하는 걸 보고 신기해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아마 당시만 해도 똥을 거름으로 쓰는게 일반적이었기 때문일 듯하다. 가뭄과 흉작 등으로 기근이 빈번하던 19세기 유럽에서 무기질 비료 이론을 고안해 식량 증산에 크게 기여했지만 현대 농경에 화학비료의 남용을 야기한 독일의 토양화학자 유스터스 폰 리비히[각주:4]조차도 ‘똥오줌을 포함해 사람이 만들어 내는 각종 찌꺼기를 흙으로 되돌리는 당시 중국의 순환 농사’를 이상적인 농경 모델로 보았다고 한다.

 

▲ 지역사회지원농업(CSA)을 하는 지인은 실내 화장실을 생태적으로 만들어 놓았다. 용변을 보는 구덩이를 깊게 파고 그 위에 좌변기 커버를 얹어 쉽게 똥오줌을 모은다. 이렇게 모은 똥오줌은 1년에 한 번 퍼내 퇴비로 만들어 쓴다고. ⓒ 김미수

 

잘만 다루면 오물이 아니라 자원
화학비료가 확산되고 수세식 화장실이 보편화되면서 똥 오줌은 더 이상 거름을 만드는 자원이 아니라 처리해서 버려야 할 쓰레기로 위상이 바뀌었다. 그나마 가축 배설물은 버리지 않고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독일 관행농업에서는 화학비료 외에 ‘귈레’라고 불리는 액화된 가축 배설물 혼합을 비료로 많이 쓰며, 유기농업에서도 소똥이나 말똥으로 만든 퇴비를 거름으로 내는 것을 중요하게여기는 이들이 꽤 있다. 그런데 관행 축산 배설물에는 항생제나 호르몬제 같은 약물이 남아 있어, 가축이 풀밭에 그냥 배설하거나 귈레 같은 생분뇨를 농지에 사용하면 주변 생태계를 오염시킬 수 있다. 하지만 독일에서 이에 대한 규제는 미비한 실정이다.


독일에서는 사람 똥오줌을 넣어 직접 만든 퇴비를, 자급용 밭에 내는 것은 묵인하면서 잔류 약물과 병원균 등을 이유로 상업적으로 내다 파는 작물에는 사용을 금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사람 똥오줌은 하수처리장으로 보내어 처리한다. 사람 똥오줌은 정말 전염 위험이 가득한 병원균 덩어리이고 처리장에서 온갖 화학물질을 써서 정화해야 하는 오물일까? 내 생각은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다르다”이다. 바이오가스 연료로 쓰거나 베어 낸 풀과 채소 껍질 같은 생분해성 쓰레기와 함께 퇴비를 만들어 비료로 쓸 수도 있다. 시골 농지 주위에서 맡을 수 있는, 코를 찌르는 이른바 ‘고향의 냄새’나 귈레를 뿌리면 수일간 멀리까지 진동하는 악취는 똥오줌을 잘못 다뤘기 때문에 생긴 나쁜 예일 뿐이다. 아무리 냄새가 고약한 똥일지라도 제대로 퇴비화하고 숙성을 마치면 오히려 낙엽이 발효되는 것 같은 향긋한 숲 흙냄새가 나지 악취를 풍기는 법은 없다.


《똥 살리기 땅 살리기》를 보면 병원균은 고온성 퇴비화 기간을 거치고 나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으며, 심지어 질병이 있는 사람의 똥오줌이라도 1년간 충분히 퇴비 숙성기간을 두면 안전하다고 한다. 2015년 초 남편이 몸담고 있는 할레 대학에서 우리 부부가 화장실 배설물을 넣어 직접 만드는 퇴비 샘플을 채취해 병원균 조사를 한 적이 있는데, 역시 문제없는 수준이었다. 가축 배설물 속 잔류 약물의 경우 고온성 퇴비화를 거치면 항생제와 호르몬제 등이 대부분 제거된다는 연구 결과가 꽤 있다. 그러나 사람 똥오줌은 산업적으로 거의 활용하지 않아서인지 안타깝게도 관련 자료를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사람이 사용하는 약품류가 동물에 비해 훨씬 다양하긴 하지만, 고온성 퇴비화를 거치거나 유용 미생물로 발효시키거나 새로운 방법을 연구하면 사람 똥오줌 속 잔류 약물도 그리 어렵지 않게 제거할 수 있지 않을까?

 

▲ (왼쪽)우리 집 화장실에서 받아 모은 똥오줌을 잘 숙성시켜 퇴비로 만들었다. 남편이 이렇게 만든 퇴비를 체에 걸러 모종을 키울 흙을 준비하고 있다. (오른쪽)유리온실 안에서 비닐 천막을 한 번 더 치고 퇴비를 만들면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을 보전할 수 있다. 이 열을 활용하면 인위적으로 온실에 난방을 하지 않아도 이른 봄부터 모종을 기를 수 있어 일석이조인 셈. ⓒ 김미수

  

퇴비 화장실로 물 낭비 줄이고 환경 살리자

다른 집과 별다를 것 없이 싸던 일상에 변화를 꾀한 건 2005년부터로, 친하게 지내던 지인이 생활하수로 변기 물을 내리는 걸 보고 눈이 번쩍 뜨여 당장 실천에 옮겼다. 그즈음 남편은 아예 오줌을 따로 모으기 시작하며 내게도 권했지만 나는 아주 질겁했다. 어느 책에서 읽은, 집에서 바가지에 오줌을 누어 받아다 주말농장에서 키우는 작물에 주었다는 아주머니 이야기가 언뜻 떠올랐지만, 당시 세면대도 없이 좌변기 하나만으로도 가득 차 따로 쭈그려 앉을 데 없는 화장실에서 어떻게 오줌을 따로 받으라는 건지, ‘남편은 여성인 나에 대한 배려가 너무 부족한 게 아닌가?’ 싶어 격렬히 저항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오줌을 모으는 건 남편만 하기로 하고 하수로 변기 물을 내리는 습관을 5년 가까이 이어 왔다. 그 덕에 물을 꽤 절약할 수 있어서, 매달 집세와 함께 지불하는 상하수도 요금 등이 포함된 부대 비용을 1년에 한 번 집주인과 정산할 때마다 얼마간 돌려받곤 했다.


2009년 가을, 집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텃밭을 일구기 시작하면서 드디어 실내 퇴비 화장실을 사용하게 되었다. 생활하수를 재사용했지만 어쨌든 하수처리장으로 보내 버려야 했던 우리 부부의 배설물을, 퇴비화해 텃밭으로 되돌림으로써 작물을 키우고 땅을 살리는 귀중한 자원으로 삼는 생태적인 삶의 순환 고리를 마침내 완성할 수 있었다.


최근 몇 년 사이 독일에서는 멀지 않은 미래에 다가올 인산비료 고갈에 대한 대비책으로 배설물이 포함된 하수 슬러지에서 특정 무기질을 얻어 내는 공정에 관한 연구가 아주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처리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고 해 과연 상용화할 수 있을지 개인적으로 의심이 좀 들지만. 하수 슬러지에서 무기질을 재생산해 내는 데 돈을 쏟아부을 게 아니라 화장실 설비를 개선해서 처음부터 배설물을 물에 섞어 버리지 않고 바로 퇴비화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농지에 돌려준다면 물 낭비, 하수 처리에 쓰는 온갖 화학약품 때문에 발생하는 생태계 오염, 화학비료 사용으로 인한 토양 척박화 등 여러 문제가 해결될 텐데 왜 굳이 돌아가려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자연의 일부이지 자연과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던 간디의 말처럼, 우리를 자연과 분리하는 수세식 화장실과 하수처리장 대신 생태적인 순환의 삶을 완성하는 퇴비 화장실이 새로운 시대의 표준이 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 우리집 욕실 수세식 양변기 옆에 위치한 테라프레타 퇴비 분리 화장실 ⓒ 김미수

우리 집 실내 퇴비 화장실

나 무로 간단하게 기본 구조를 만들어 위에는 좌변기 커버를 얹었다. 안에는 뒤쪽에 10L짜리 양동이 두 개를 겹쳐 올려 똥을 담고, 앞쪽엔 지름 20㎝ 정도의 단단한 플라스틱 용기를 잘라 뒤집은 뒤 호스를 끼워 또 다른 5L짜리 플라스틱 통으로 연결해 오줌을 모은다. 용변을 모으는 통은 모두 대학 구내식당에서 얻어 온 것으로, 식품을 담던 안전한 용기를 재활용한 것이다. 이렇게 모은 오줌은 작물이 자라는 동안 수시로 물과 섞어 액비로 준다. 똥은 부엌에서 나온 식재료 찌꺼기, 베어 낸 풀과 쓸어 모은 낙엽 등 정원 찌꺼기와 함께 오줌을 뿌려 가며 1년에 서너 번 퇴비로 만들어 밭에 준다.

 

 

냄새 없이 깔끔하게 유지하는 비결
- 똥오줌을 따로 모은다. 따로 모으지 않으면 숯 알갱이나 지푸라기, 톱밥 같은 탄소 함량이 높은 재료를 넉넉히 넣어 오줌이 흡수되도록 해야 냄새가 적은데, 그렇게 하면 용기가 차는 속도가 더 빠르다.
- 똥 양동이를 사용하지 않을 때는 꼭 맞는 뚜껑으로 늘 닫아 둔다.
- 대변을 볼 때마다 정원 찌꺼기를 직접 구워 만든 숯 알갱이를 대변 표면이 덮힐 만큼 뿌린다.
- 오줌을 받는 호스 속에 콘돔 끝을 잘라 끼워 넣으면 오줌이 흐른 뒤 콘돔의 얇은 고무 면이 서로 달라붙으며 경로를 차단해 악취가 올라오지 않는다
.


 

↘ 김미수 님은 2005년 독일로 건너가 ‘조금씩 더 생태적으로 살아가기’에 중심을 두고 냉장고 없는 저에너지 부엌을 시작으로 실내 퇴비 화장실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또 먹을거리를 직접 가꾸는 등 좀 더 지속 가능하고, 좀 덜 의존적인 생태 순환의 삶을 실천해 나가고 있습니다. my-ecolife.net에 이런 경험을 나누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생활협동조합인 한살림에서 만드는 월간지 <살림이야기> 55호 2016년 1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2016년 첫호부터 '[독일댁의 생태적인 삶]'이란 꼭지에 독일에서 겪는 생태적인 삶과 독일내 생태와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살림이야기 측에서 동의해 주신 덕분에 다음호가 발간되면서 이 글을 My-ecoLife에도 전문 공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살림이야기 홈페이지에 가시면 과월호의 다른 모든 내용도 보실 수 있습니다.

Link: [살림이야기]


 참고 자료 



  1. BR(Bayerischer Rundfunk), "Klo-Kulturgeschichte-Karriere des stillen Örtchens", www.br.de, 2016.11.18 [본문으로]
  2. 한국수자원공사, '물이야기/물과 통계/쉬운 물통계/상수도'편 슬라이드 4번, www.kwater.or.kr(검색일 2017.3.20) [본문으로]
  3. 조셉 젠킨스, 이재성 역, <<인분 핸드북 - 똥 살리기 땅 살리기>>, 녹색평론사, 2004, p.113 [본문으로]
  4. Justus von Liebig, <14. Brief>, 1859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