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를 생태적으로 살아가는 나의 비법-"헌옷들아, 이젠 내게로 와!"

2010. 2. 5. 10:00My-ecoLife

얼마 전에 길을 잘못 들어 예기치 않게 중고 옷가게를 발견하게 되었다. 카데디(KadeDi)라는 이 가게의 이름은 풀어쓰면 디아코니 백화점(Kaufhof der Diakonie)이란 뜻이다. 디아코니는 사회 저소득층과 실업자들의 자립을 돕고 학대 아동을 돕는 등의 복지, 보건 분야를 포함한 전반적인 사회 문제해결을 위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기독교 계열의 사회단체다.
 

 카데디(KadeDi) 베젤(Wesel) 점

▲ 카데디(KadeDi) 베젤(Wesel) 점- 카데디는 디아코니 백화점이란 뜻의 중고용품 가게다. ⓒ 김미수


생태적으로 살아가려고 결심한 이후로는, 한국에서도 새 옷을 거의 사 입지 않았다. 한 번은 군을 제대하고 복학한 동기 남자애에게서 "니 패션은 2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하다"라는 말을 듣기도 했었다.

 

동기 애를 마주친 시점에서 거슬러 올라간 2년 전에, 꽤 오랜만에 사 입었던 새 옷을 보고 같이 수업을 듣던 학과 애들이 나름 환호를 해줬던 기억이 있다(내가 너무 오랜만에 새 옷을 입고 나타나서 그랬는지?). 공교롭게도 복학한 동기 애를 마주쳤을 때 입고 있었던 티셔츠가 2년 전 바로 그 옷이었다.

독일에서도 한동안은 옷 구매 없이 살다가 남편 졸업 후 정장 스타일의 옷이 필요해 베를린을 갔었다. 베를린에는 후마나(Humana)라는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가게와 같은 매장이 꽤 여러 곳 있다. 물론 수익금을 세계 빈국을 돕는 사업에 사용하는 후마나와 비슷한 목적을 가진 옥스팜 같은 곳에서 운영하는 매장이나 일반 헌 옷가게는 많이 있다. 하지만, 가격이나 규모면에 있어 그 어떤 곳도 후마나 매장을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베를린의 후마나는 선택의 폭이 매우 넓다.

 

베를린 후마나 본점은 일반 쇼핑몰 못지않은 4층이나 되는 상당한 규모의 매장이다. 그런 곳에서 필요한 옷들을 2년 전에 구입하고, 여태까지 별 소비 없이 지내는 중이었다. 그런데 정말 우연히도 시댁이 있는 베젤(Wesel)에서 비슷한 목적으로 운영되는 중고 매장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이름 값하는 중고용품 백화점 카데디 매장

 

카데디 부엌용품 코너 매장 안

▲ 카데디 부엌용품 코너- 매장 안은 생각보다 꽤 넓었다. ⓒ 김미수


들어가 보니 매장은 400제곱미터로 상당히 넓었다. 베젤 점은 뒤스부르크(Duisburg)점의 3번째 지점으로 지난 2008년 8월에 문을 열었다고 한다. 이 뒤스부르크 본점과 근처 2개의 지점- 이렇게 3개의 매장이 아직은 독일 내에서 유일한 디아코니 중고 가게라고 베젤 점 지점장이 귀띔해 줬다.

카데디 매장은 다음 두 가지 사안을 중점에 두고 설립이 되었다고 한다. 첫째는 시민으로부터, 시민을 위한(von den Burgern, fuer die Burger). 둘째는 실업자인 시민에게 일자리의 기회 제공. 카데디 매장에서 판매하는 거의 모든 물품은 시민의 기증을 받은 것들인데(시민으로부터), 이것들을 종류별로 잘 정리해 저렴한 가격에 시민에게 판매하고 있다(시민을 위한).

 

카데디에는 점원이 여러 명의 있었는데, 이들 대부분이 비교적 장기적인 일자리를 제공받고 있다고 한다. 카데디는 독일 노동청(Arbeitsagentur)과의 협력을 통해, 장기 실업자들을 위한 아베엠 (ABM: Arbeitsbeschaffungsmaßnahme, 1년 이상의 기간으로 제공되는 장기 실업자를 위한 인턴제도 같은 것.), 1.5 유로 일자리(실업자금을 받는 실업자들을 위한 미니 직업) 등을 제공한다.

 

이러한 일자리를 통한 일차적인 직업 경험을 제공해, 실업자들이 직업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한다. 점원들의 임금을 제외한 나머지 수익금은 모두 카데디의 모체 격인 디아코니로 전해져, 디아코니의 다른 사회 복지 사업을 하는 데 쓰인다.
 

주력 상품인 옷과 관련 액세서리

▲ 주력 상품인 옷과 관련 액세서리- 오른쪽엔 신발코너, 왼쪽에는 가전제품과 가구 코너, 백화점이란 그 이름이 결코 무색하지 않다. ⓒ 김미수


이곳의 주력 상품은 옷, 그중에서도 단연 여성복으로 평상복에서 정장까지 골고루 갖춰졌다. 그 외에도 남성복·아이 옷·아기 옷·유모차 등의 아기 용품에 부엌용품 그리고 약간의 가구와 가전제품까지 별로 빠지는 것 없이 구색이 잘 맞춰져 있다. 매장을 여기저기 둘러보고 있는데, 아이를 데리고 온 젊은 엄마, 품위 있게 차려입은 나이가 지긋하신 노부부, 젊은 아가씨 등등 (가난하고 후줄그레한 사람들만 중고 매장을 찾을 거라는 일부 사람들의 편견과는 달리) 다양한 계층의 손님들이 매장을 찾았다.

 

가격대도 후마나처럼 역시나 다양했다. 웬만한 셔츠나 바지 등은 4-7유로 이내면 살 수 있고, 20유로가 넘어가는 고가(?)의 상품은 대부분 겨울 외투가 차지하고 있었다. 판매되는 옷의 상표 종류도 이름 모를 상표에서 부터 중고가의 상표까지 다양했다.

나는 이곳에서 중저가 상표의 새 외투 한 벌 값도 안 되는 금액으로, 평소 갖고 싶었던 스타일의 긴치마·카디건·캐주얼한 재킷·셔츠 그리고 작은 액세서리까지 몽땅 살 수 있었다. 너무 과소비(지출 금액이 아닌, 사들인 옷가지 수를 생각할 때)를 한 것은 아닌가 싶어 약간 고민이 되기도 했지만, 옷이 아주 마음에 들어 큰 마음 먹고 모두 사게 되었다.

대부분 사람들이 중고 가게를 찾는 가장 큰 이유 무엇보다도 '저렴한 가격' 때문이라 생각한다. 나 역시 비슷한 이유로 카데디 같은 가게를 찾는다. 그런데 내게는 가격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바로 생태적인 소비를 하기 위해서다.

 

새 옷, 유행에 발 맞춰 철마다 사입어 줘야 하나?

 

옷 사는 게 생태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물론 상관이 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전 세계인들에게 사랑받는 천연 소재인 면으로 만든 옷을 예를 들어 보자. 면을 만들기 위해서는 목화 솜이 필요하다. 목화 솜은 당연히 목화를 재배해서 얻어야 하고. 그런데 유기농이 아닌, 일반적인 대규모 단일 경작을 하는 목화는 병충해에 취약하다. 이 때문에 엄청난 양의 농약이 살포되는데, 전 세계 목화 경작지에 뿌려지는 농약이 세계 농약 시장의 35%에 달한다고 한다. 농약사용으로 말미암은 환경오염과 농민들이 겪는 건강상의 문제 등을 구태여 이 글에서 언급하지 않더라도 농약이 얼마나 해로운지 다들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위키피디아, Baumwollen, Anbau und Ökologie편)

 

그뿐만 아니라, 알록달록 아름다운 무늬와 색을 찍어내기 위한 화학 염색작업은 그 과정에 많은 양의 물이 필요한데다가, 이 과정에서 나오는 하수는 오염의 정도가 꽤 심각하다. 그리고 많은 옷 공장들은 대부분 인건비가 싼 제3세계의 가난한 나라에 많은데,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문제가 바로 저임금, 열악한 노동 환경에 따른 노동착취와 아동 노동이다. 또 몇 년 전부터는 점점 주기가 짧아지는 유행에 따른, 한철 입고 버리는 저가의 패스트 패션(fast fashion) 옷들이 환경문제로 대두하기도 했다. (한겨레신문, 한두 번 입고 버리는 '스트리트 패션' 환경오염 주범)


옷 하나를 집어 들고 따져보니, 범세계적인 농업, 환경, 사회 문제가 줄줄이 딸려 나온다. 면 옷 하나에 세계화의 다양한 문제들이 들어 있다니, 참 재밌는(?) 세상이다. 이쯤되면 '범세계적인 온갖 문제 발생에 일조하는 새 옷을 내가 꼭 유행에 발 맞춰 철마다 사입어 줘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할 것이다.

생태적인 소비의 다른 방법으로 유기농 면 옷을 사입을 수도 있다. 여력이 된다면. 이왕이면, 유기농+공정무역제품을 사는 게 좋겠다. 내 몸만을 생각한다면, 유기농 면 제품으로도 만족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빈국의 생산 노동자들까지 고려한다면 결론은 유기농+공정무역이다.

나만의 보물 찾기 놀이가 숨어 있는 여성복 코너

▲ 나만의 보물 찾기 놀이가 숨어 있는 여성복 코너- 색깔별, 치수별로 잘 정돈되어 있다. ⓒ 김미수



그렇다면, 이쯤에서 나의 선택은?



광고에서 보니, 유기농 면에 천연 염색한 옷들이 수수하면서도 품위 있어 보이는 게 참 좋아 보이긴 했다. 천연 염색이라는데, 색이 어찌 그리 곱던지…. 그래도 나는  여전히 독일의 후마나, 카데디 같은 사회적인 중고가게를 고집한다. 내게 있어 중고 가게는 유행에 민감한 보통 새 옷가게가 제공하지 못하는 특별한 즐거움을 안겨 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많은 헌 옷들 가운데서 내가 원하는 옷을 찾아내고, 또 예기치 못한 새로운 스타일의 옷을 발견할 수 있는 나만의 보물찾기 놀이가 숨겨진 곳. 카데디는 바로 그런 곳이다. 게다가 내 소비가 다른 이들을 돕고 세상을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데 보탬이 된다는데, 이런 곳을 마다할 이유가 있나.

 

아주 솔직한 이유를 하나 더 덧붙이자면, 아직은 고가인 공정무역 유기농 옷을 사입다간 내 가랑이가 찢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사실 내 가슴 한구석에 살짝 숨어 있기 때문이다.